대중의 소리담은 신나는 근대

우리나라에 유성기가 처음 소개된 것은 1899년 3월이다. 여러 신문에는 이 신기한 유성기 소리를 들려주고 돈을 받는 집의 광고가 나와 있어서 당시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유성기는 실로 경악할 만큼 놀라운 신문물이었기에 그만큼 호기심도 컸다.

1902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 협률사가 건립되고 1903년에는 동대문의 한성전기회사에서 활동사진소를 개관하였다. 이후 극장 공연은 청일전쟁 등으로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1906년 2월 협률사가 재개관하여 원각사로, 동대문 활동사진소는 광무대로 다시 창립되어 공연시장이 크게 활성화됐다. 우리나라 유성기음반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발매됐다.

당시 극장의 공연 모습을 보면 동대문 전차 차고를 광무대 극장으로 개조하고 활동사진과 창극 춘향전, 잡가, 가야금, 승무 등을 공연하였으며 꼭두각시놀음을 하기 위해 무대를 바꾸는 틈에 유성기로 음악을 틀어주고 있었다.

초창기 유성기는 워낙 고가여서 일반인들은 극장이나 유료감상을 통해 유성기를 접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음반에 수록되는 곡목도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노래만 취입되었고 당시 극장에서 자주 공연되던 서울소리 중심으로 발매되었다.

또한 일부에서는 호객용으로 유성기를 사용하였는데 친일단체인 ‘국시유세단’이 그런 예이다. 이는 대중들의 호기심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던 친일단체의 얄팍한 술수이기도 하지만 유성기가 보급되던 그 당시에 대중들의 관심을 반증하는 사회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근대식 극장의 출현과 이를 바탕으로 한 공연시장의 급속한 성장, 환등기나 활동사진 같은 영상을 통한 새로운 문물의 소개, 딱지본 책의 출판 등은 대중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적 문화현상을 일으켰다.

즉 공연시장에서 유통되는 공연물은 완판본 춘향전이나 딱지본 신구잡가와 같은 전통적인 문자매체로 기록되기도 하고, 새로운 사진술에 의해 영상으로 기록되기도 하였으며, 그리고 최첨단 매체인 음반으로도 담기게 된 것이다.

문자, 영상, 음향이라는 매체가 문화상품에 재수용되어 유통됨으로써 대중매체를 통한 2차적인 문화의 향유라는 근대적인 문화현상을 불러왔다. 그러니까 극장은 공연을 낳고 공연은 다시 딱지책과 유성기판과 기생의 브로마이드를 탄생시켜 대중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유성기음반의 탄생과 함께 신나는 근대가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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