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연극학과) 교수

“이 부분에서는 독백이 들어가야지”
“좋아, 이런 느낌으로 계속 이어가!”

연습장에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보다도 배우 하나하나를 꿰뚫어 보는듯한 날카로운 눈빛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그, ‘문화 게릴라’가 동악에 등장했다.
연출에서부터 문학과 영화까지 전 방위의 문화를 사수하는 약간은 거칠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비정규군, 이윤택 교수(연극학)와 만났다.


- 첫 강단에 선 소감과 앞으로의 강의계획은.
= 오늘 대학원 제작실습 수업을 하고 왔다. 대학원생들의 공부가 거의 이론적인 것이라 실습을 두려워 할 줄 알았는데 수업에 임하는 열정이 뛰어나 다행이었다. 이 수업과 함께 학부 4학년 수업도 맡았는데 둘 다 제작 실습, 공연을 전제로 한 것이라 일반수업과는 차이가 있다. 나는 원론적이고 개념을 잡아주는 동시에 학생들의 자발적인 제작 능력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노력 할 것이다.

- 요즘 언론에서 학벌 없이도 성공한 사례로 꼽히고 있는데 이교수가 생각하는 대학 강단에서 학력이란.
= 진정한 학력이란 대학의 중심이며 대학을 이끄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력과 학벌은 다르다. 학력은 정신적이고 내용적인 것이지만 학벌은 패거리 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학력은 과학, 인문학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예술 부분, 미학에 있어서는 학문의 부분뿐만 아니라 실제 현장 창작자들의 세계가 있다. 어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평생을 쌓아온 예술창작에 대한 노하우가 있는 만큼 학벌이 중요치 않다. 그러한 사람들의 학력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이다.

- 전문대학에서 교육학 공부를 했는데 대학에 진학해 정식교수가 되고자 한 적은 없었나.
= 전혀 없었다. 우연하게 대학 교육을 받지 않고 세상에 뛰어들게 됐지만 스스로도 제도권 속의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비주류라는 것을 자부하고 살았다. 사실 강의를 하게 된 것도 대학에서 내 현장능력과 경험을 높이 사 수업해 달라고 한 것이었다.

내 자신은 초빙교수로도 만족했었지만 가르치다보니 연구지원도 되지 않는 상황에 학생들을 제대로 지도할 수 없어 화가 났다. 그래서 5월에 실기교육을 맡아 달라고 연락해 왔을 때 학벌이 없지만 초빙교수로는 가지 않겠다는 것을 밝혔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새 총장님이 학교를 아주 뒤집고 계시더라. 학교를 개혁시키는 과정에서 학벌 없이도 교수를 할 수 있도록 방침을 내린 것 같다. 그래서 임용 된 것 아닌가 싶다.

그리고 신정아 사건이 발생하며 일어난 혼돈스러운 상황에서 내가 갑자기 아주 정직한 사람이 돼 있더라. 나는 그렇게 과대평가될 사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학생들을 잘 못 가르칠 사람도 아니다.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사실 언론에서 이번 임용과정을 가지고 상대적으로 정직한 사람 만드는 것이 기분 좋지 않다.

- 부산일보에서의 기자경력이 있는데.
= 그때 당시에도 한국일보와 KBS 빼고는 모두 대졸자만 뽑았다. KBS에 떨어지고 보니 부산일보에 난 기자선발 공고에 ‘4년제 대학 졸업자와 동등학력자’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이 학력이라는 단어의 ‘력’자가 ‘力’ 힘력자였다. 그래서 아, 나도 할수 있겠구나 싶어서 지원을 했다. 그런데 이게 오타였던 거지. 사장님과 직원들 모여 회의하고 난리였는데, 결국 뽑혀서 일하게 됐다.

- 수년간 기자생활을 하다가 다시 연극판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는
=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났다. 밤에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이 화염병 던지고 아침에는 기사검열을 받으러 가야 했다. 잘못하면 구둣발로 차이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힘이 없는 글쟁이의 처지에 회의가 생겼다. 그래서 ‘차라리 광대가 되자’라는 생각으로 굿판을 따라다니게 됐고 그 굿을 무대에 올리고 연희단 거리패도 만들었다.

- 기형도 시인이 붙여 준 ‘문화게릴라’라는 별칭이 이제는 대표적인 수식어가 됐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 처음엔 문화게릴라라는 말이 불쾌했다. 정규군이 아니라는 거지. 학벌도 없는 지방 촌놈이 글을 쓰고 극을 올리니 제도권인 서울권의 인물들이 이윤택이라는 사람을 별종, 다른사람으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이 별명이 자랑스럽다. 제도권에 결탁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기에 좀 더 정직하고 건강하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번에 교수가 돼버려서 문화게릴라라는 말에 좀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웃음)

- 공연 기획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 ‘관객’이다. ‘이렇게 하면 관객이 재밌어 하고 놀랄거야, 반드시 반응할 거야’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외국 공연을 우리나라에서 할 땐 우리 정서와 맞게 공연해야 한다. 요즘은 외국인도 한국말 할 줄 아는 세상인데 외국공연이라도 한국에서 공연하면 한국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공연하는 ‘공길전’도 뮤지컬 ‘이’를 다시 재구성 한 것인데 아주 고급스러운 마당극처럼 만들 것이다. 아, 항상 생각했던 것인데 뮤지컬은 너무 비싸다. 내가 꼭 극단에 말해 동국대 학생들은 학생증을 제시하면 1만원에 볼 수 있도록 하겠다. 이렇게 비싸서야 학생들이 공연을 어떻게 보겠는가.

-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동국대학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위치와 캠퍼스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만해선생의 당당함이 존재하고 있다.
역사적 전통도 캠퍼스도 정말 잘된 곳인 만큼 동국대 학생으로서 자존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동대인’이라는 말에 자부심을 가지고 스스로 쓸 수 있는 그런 학생들이 되어주길 바란다.

 

예술의 전당 연습실에서 진행된 뮤지컬 ‘공길전’을 지도하는 모습.
대학원생과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1972년 이윤택 교수가 제작, 주연, 연출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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