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다. 나는 내 인생의 전부를 책임지는 총감독이자 주연배우이다.


나의 깨달음은 오직 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붓다조차도 내 대신 깨달아주지 못한다. 전생을 마감한 내 업식(業識)은 49일(7×7)을 기약하고 떠돌고 있었다.


때마침 성관계를 맺고 있는 어느 커플 중의 한 여인이 임신주기였다. 나는 내 업식에 맞는 향기를 찾아 여인의 자궁 속으로 들어갔다. 열 달가량 양수 속을 헤엄치던 나는 금생이라는 새로운 무대에 올랐다. 이처럼 나는 전생의 내 의지에 의해 현재의 부모를 선택했다.


금생에서 아직 의지가 미숙했던 나는 부모의 도움으로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내 의지는 점점 성숙되어져 갔다. 5~6학년이 되자 나는 모든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싶어 했다. 해서 집 근처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자의로 진학했다. 나는 부모의 도움을 받고 그분들의 조언과 의사를 수용해서 판단했다.


이즈음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자각이 내게 생겨났다. 더 이상 나는 부모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이제 부모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그분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죽어줄 수도 없었다. 나는 부모가 나를 낳아준 것이 아니라 내가 부모를 선택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헬리콥터형 부모’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자녀 주변을 맴돌며 헬리콥터 프로펠러처럼 간섭을 멈추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학의 학사 일정과 수업 과제물 및 진로 결정에서조차도 부모의 뜻에 의존하는 엑스트라 학생들이 다수라고 들린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입사지원서를 낼 때마다 상의한다. 또 고시 준비를 적극 강요해 공부하게 한다. 채용관련 문의조차 부모가 직접 하고, 부모의 반대로 입사를 포기하기도 한다. 면접 때 동행하고, 입사기업을 정해주고, 면접을 보게 하는 것까지 결정하고 있다 한다.


사자는 갓 낳은 자기 새끼들을 절벽 아래로 밀쳐버린다. 그런 뒤에 되올라온 새끼들만 기른다. 자립심이 강한 사람은 부모의 경제적 그늘에서 안주하는 ‘캥거루족’이 되려 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부모는 진로와 직장을 구하는 자녀들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돕는 ‘컨설턴트형 부모’가 될지언정 과도하게 관심 갖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이생의 첫 데뷔 무대에서부터 내 인생의 주연은 나였다. 본디 무대 위에서 배우는 고독한 것이다. 그 고독을 이겨내고 무대를 즐길 때 비로소 주인공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것이다. 부모나 친척이나 친구 등등은 내 관객일 뿐이다.


그들은 나의 고독을 무너뜨려 줄 청중이자 팬들이다. 우리 모두 ‘주인공’으로 다시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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