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다. 내일은 우리 학교 새로운 100년의 첫 개교기념일이다. 동국대학교가 또 한 번의 의미 있는 생일을 맞는 것이다. 우리는 한 세기의 역사를 거느리고 있는 유서 깊은 백 한 살이지만, 또 어찌 보면 이제 새로운 한 살이기도 하다. 새로운 한 살이라는 뜻은 지난 백년과는 분명히 다른, 새로운 깨침과 다짐과 실천이 우리의 미래 성장 동력이 된다는 의미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정확하게 바로 보고,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모두의 내면으로부터 솟아나게 하며, 과감한 결단으로 학교를 바꾸어 나가는 길이 새로움의 내용이 될 터이다.


학내에 변화와 혁신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마치 동국대학교라는 이름만 남겨놓고 다 바꿀 태세다. 조직이 이미 바뀌었고, 바뀐 조직에 따른 혁신적 인사 배치가 단행되었으며, 각 부서별 경영 평가제가 곧 도입된다. 자율과 책임을 가진 모든 부서장, 단과대학장들은 지난 백 년 간 우리 캠퍼스에서 듣도 보도 못한 경영계약이라는 걸 총장과 체결해야 한다. 대기업 본사가 계열사 사장단 평가하는 것과 비슷하다. 실적이 좋으면 인센티브를 주고 실적이 저조하면 사장을 교체하거나 과감히 정리해 버리는 게 기업의 생리다. 반드시 똑같은 방식은 아니지만 기본 구조가 다르지 않다. 이 파격적인 실험의 방향이 어디로 갈 지 우리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주시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 우리는 매우 위험하고 불안한, 파격적이고 희망찬 도전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모두가 분주하다. 당장 학과 통폐합 문제로 캠퍼스가 요란하다. 대학의 본질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때문이다. 학문을 육성·발전시키는 기능과,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하는 기능이 충돌한다. 학문의 고유한 가치는 시장 경쟁력과 상관없이 지속되어 온 전통이 있다. 그 전통을 온존시키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이것은 시대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대학의 단점이기도 하지만, 대학이라는 조직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소위 소수를 위한 학문이라는 것은 비록 성과를 바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언젠가, 어디에선가는 필요한 법이다. 그러므로 효율성이나 활용도가 떨어져도 제도적인 차원에서 보호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개혁 마인드는 이런 보호 논리와 상충한다. 우리 대학이 그 소수를 떠안아야 할 책무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 경쟁력 있는 분야만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발전 속도를 훨씬 빠르게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는 명분 앞에 소수 학문 옹호론의 목소리는 작아지는 듯하다. 전국의 많은 대학들이 비슷한 사정으로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문제를 떠안은 채 오래 고민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못한 법이다. 공동의 선과 이익을 위해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를 깊이 토론하고, 토론이 끝난 뒤에는 빨리 결정하는 게 최선이다. 독단주의와 개혁 제일주의도 경계해야 하지만, 우리 내부에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무사안일과 구태의연, 이기주의와 보신주의도 배척의 대상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새로 한 살을 먹는 우리 학교의 미래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자.


영국의 극작가인 버나드 쇼는 생전에 자신의 묘비명을 써서 더욱 유명해졌는데 그것은 묘비명의 유머러스하고 촌철살인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결단을 빨리 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풍자적으로 드러낸 문구는 다음과 같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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