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대학은 크나 큰 사회속에서 문화의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조직체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이 사회와 유리된 상아탑이라는 말은 아니다. 항상 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사회의 무지를 계몽하고 사회의 불행을 해부하며 사회조직의 모순을 검토하고 인류의 복리증진을 위한 설계도의 작성을 맡고 있는 곳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의 권위는 엄연하며 대학의 위신 실추는 곧 국가의 흥망에 영향(影響)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은 그 나라 발전의 상징이며 희망인 것이다. 숨은 정열이 대학에서 약동하고 비약의 터전이 대학에서 닦아진다.

Ⅱ. 억압적인 언론정책 밑에서 완전히 우매(愚昧)화한 민중이 중세봉건사회에 있어서 농노(農奴)적인 신분관계를 타파치 못하고 위정가 농단(壟斷)의 희생이 된 것은 오로지 철통같은 봉건사회조직과 그의 엄중한 감시 밑에서 말과 행동의 자유를 박탈(剝奪)당한 소이(所以)라 할 것이다. 그러나 여하한 봉건사회조직도 자체내에서 숙성해 가는 경제조건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사회 세력의 대두를 보게 됨으로 말미암아 여지없이 파괴되고 인간의 해방이 왔다.
소위(所謂) 정치적 민주주의(政治的 民主主義)가 사회발전의 유일한 「꼬올」인양 고창(高唱)되었던 시대로부터 언론의 자유는 인간(人間)의 기본적인 자유권의 하나로서 신봉(信奉)되었으며 「따-크 애이지」(암흑의 시대)에서 광명(光明)의 시대가 전개되고 인류사회의 진전(進展)은 눈부신 발전을 보였으나, 유독 사상의 진보는 항상 그의 앞장을 섰었고 언론사상의 신창(伸暢)에 지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신문(新聞)이었다.
고립(孤立)되고 폐쇄된 사회에서 세계적인 연관을 가진 사회로 변함에 따라 세계의 방방곡곡에서 일어난 제반 사건이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금일에 있어서 이와 같이 나날이 변화해가는 세계의 정세를 민중에게 보도하고 또는 민중의 일반적인 여론을 환기시켜 전체적인 복리를 도모함에는 신문이 항상 선봉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할 것이다. 결국 언론 자유의 한 소산인 신문이 드디어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발전시키는 유일무이(唯一無二)의 기관이었다.

Ⅲ. 진리의 전당인 대학(大學)에 있어서 제기되는 명제는 일상 직접 인류사회생활과 관계되는 것일 것이다. 이곳에 대학생활의 생생한 움직임이 있고 부절(不絶)한 향상(向上)이 있으며 영원한 신의(信義)가 있는 것이다. 대학을 마치 사회와 유리되어 있는 존재인 것 같이 그릇 해석되었던 옛 시대의 관념에는 자그마치 변천을 가져왔고, 진리의 탐구와 그의 실천의 제일 전사(第一 戰士)인 학도는 사회생활(社會生活)의 중심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학이 완전히 사회와 융합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대학은 대학으로서의 자신의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와 깊은 관계가 있으면서 진리의 탐구란 자기 독특의 사명을 완수하는 곳에 대학의 대학으로서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 나라에 해방이 온지도 어언 육개 성상(六個 星霜), 불행히도 모든 학원은 스스로의 사명을 망각하고 정치적인 혼란속에 휩쓸려 그 혼란을 조장하는 제 일인자적(第一人者的) 활약을 어김없이 해왔다. 폭력과 모략과 중상이 학원을 뒤덮고, 가장 명랑하고 희망(希望)이 있어야할 곳에 암운(暗雲)이 저미(低迷)했으며, 진리의 탐구에 대한 의욕은 점차 사라져가고 퇴폐와 무기력과 방종만이 제멋대로 발호(跋扈)했다.
민국의 탄생과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태풍은 일과(一過)했고, 새로운 싹이 트며 사라졌던 희망은 소생하고, 잃어버린 명랑은 옛터로 다시 찾아 들며, 경박은 물러서고 진지(眞摯)가 나타났다. 스스로 더듬어 갈 「코-스」는 결정되었다. 이제는 그 「코-스」를 되도록 빨리 뛰어 「꼬올」에 돌진할 따름이다.

Ⅳ. 이와 같은 때 본 대학신문(大學新聞)의 창간(創刊)을 보게된 것은 퍽이나 반가운 일이라 하겠다. 물론 약간 늦어진 감이 없지 않아 있으나 대기(大器)는 만성(晩成)이라고 한다.
그러면 본 대학신문(大學新聞)이 지니고 나온 사명(使命)은 무엇인가.
진리(眞理)의 전당에서 유동하는 사회의 흐름을 감각한 학도(學徒)가 스스로 연마한 진리의 한마디 한마디를 그대로 발표하고, 민중의 지도자로서 자부하는 학도가 사회의 여론을 지도하고 대중을 각성시키는 목탁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에 필요한 것은 하나의 발표기관(發表機關)이며 신문(新聞)만이 이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본 신문발행(新聞發行)의 목적에 학(學)의 온상으로서의 대학(大學)의 본질(本質)을 천명하고 민족문화선양에 기여하며, 또는 인류(人類)가 주재하는 역사진행을 정확히 보도함으로써 학생(學生)의 생득적(生得的)·경험적 관찰력·추리력의 함양에 있다고 규정되어 있음은 저간의 사정을 말하며, 본 신문(新聞) 발행의 취지서(趣旨書)에 이조(李朝) 말엽의 정치의 부패와 왜제(倭帝)침략으로 인한 민족적 수난이 정치적 실망(政治的 失望)·실의(失意)가 절정에 달하였을 때 민중의 생활영위의 방편으로서 신봉된 아이롱(啞耳聾)주의에 원인하므로 오늘의 역사의 변화가 제시하는 운명 공동체의 이념(理念)을 구현하고 국가의 부강, 민족경제의 재편성, 민족문화(民族文化) 향상(向上), 사회복리(社會福利)의 증진을 기도(企圖)하는 우리의 행동강령을, 중앙에 국제적 신의(信義)에 호소하고 전민족(全民族)을 조국전선규합을 조직하는데 있어서는 아이롱(啞耳聾)주의를 타파하고 민족언론(民族言論) 보도지의 과감한 진출이 있어야한다고 기록되어 있음은 이와같은 사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본 대학신문(大學新聞)이 이와같은 사명을 완수할는지는 미지수에 속한다고 할 것이나 신세대(新世代)의 주인으로서 연학(硏學), 내성(內省), 사색 창의(思索 創意), 명상(瞑想) 그리고 봉사(奉仕)를 선명히 반영할 수 있는 프리즘의 분석을 표방으로 삼는 것과 관찰(觀察), 비판(批判)에 예의노력(銳意努力)할 것이 「동대신문(東大新聞)」의 본유(本有)하는 일반적 사회성(社會性)과 사학적(私學的) 독자성(獨自性)을 발현하는 오직 하나의 길이다.
동대신문(東大新聞)이여, 영원히 빛날지어다.

<1950년 4월 15일>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