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그늘 두꺼워지고 흙 묻은 연장들
허청에 함부로 널브러지고
마당가 매캐한 모깃불 피어오르는
다 늦은 저녁 멍석 위 둥근 밥상
식구들 말없는, 분주한 수저질
뜨거운 우렁된장 속으로 겁없이
뛰어드는 밤새 울음,
물김치 속으로 비계처럼 둥둥
별 몇 점 떠 있고 냉수 사발 속으로
아, 새까맣게 몰려오는 풀벌레 울음
베어문 풋고추의 독한,
까닭 모를 설움으로
능선처럼 불룩해진 배
트림 몇 번으로 꺼트리며 사립 나서면
태지봉 옆구리를 헉헉,
숨이 가쁜 듯 비틀대는
농주에 취한 달의 거친 숨소리
아, 그날의 위대했던 반찬들이여

- 시집 ‘위대한 식사’
(세계사, 2002)

거대담론의 시대에서 미시담론의 시대를 거쳐 오는 동안, 사람들은 물론 시인들도 변하지 않을 수 없었는가 보다. 시집 ‘시간의 그물’을 읽어보면, 시인은 8,90년대의 한때 민족문학 작가회의 간사를 맡았고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면서 통음(痛飮)을 했던 내력이 시집 곳곳에 나타난다. 그러나 시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소시민으로 전락해가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분노하며 생태와 환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십 몇 년 사이에 시집을 6권이나 내는 저력은 그의 시에 대한 열정뿐 아니라, 민중과 삶에 대한 사랑의 표현일 것이다.
‘위대한 식사’는 우리 농촌공동체가 아직 해체되기 이전의 건강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힘든 농사일을 마친 식구들이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 놓고 밥상에 둘러앉아, 늦은 저녁식사를 한다. 밥상에는 우렁 된장국과 물김치, 풋고추, 냉수 사발이 올려져 있다. 어찌 보면 초라한 밥상이지만, 식구들이 ‘말없이’ ‘분주하게’ 수저질을 함으로써 하루 동안 열심히 일했음을 반증한다.
그런데 시인은 식구들이 먹는 우렁 된장 속으로 밤새 울음이 뛰어들고, 물김치 속으로 별 몇 점이 떠 있고, 냉수 사발 속으로 풀벌레 울음이 몰려드는 것을 발견한다. 식사를 하는 행위가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일 뿐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고 우주와 소통을 하는 과정으로 증폭된다. 이 어찌 거룩한 식사가 아니겠는가?
시인이 서울로 올라와 이십 몇 년을 떠돌면서 자연과 동떨어진 도시의 인공적인 식사에 한없이 서러웠을 것이다. 고향의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식사를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이제 도시에서의 자연은 철근과 시멘트, 콘크리트 더미로 대체되었다. 아무리 해체되고 파편화되었다고 하지마는, 도시인들도 자연의 일부로 간주해야 하지 않을까? 시가 불편하지 않을 수 없고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강 상 윤
시인, 동국문학인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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