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연
정 채 봉

나는 없어져도 좋다
너는 행복하여라

없어진 것도 아닌
행복한 것도 아닌
너와 나는 다시 약속한다

나는 없어져도 좋다
너는 행복하여라



자신의 이름에 ‘채송화 채, 봉숭아 봉’이라고 토를 달던 사람. 마음만큼이나 눈이 맑아서, 마주하면 또렷한 ‘눈부처’가 보이던 사람. 서늘한 생각의 샘물을 길어 아름다운 이야기 꽃밭을 가꾸던 사람. 어른들에겐 어여쁜 생각의 꽃을 나눠주어 가슴에 달게 하고, 아이들에겐 꿈의 씨앗을 주어 마음 밭에 키우게 하던 사람.
정채봉(1946~2001). 세상이 동화작가로만 기억하는 그를 나는 시인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시집 한권(‘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현대문학북스, 2000)을 남기고 갔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타고난 시심(詩心)’이라고 밖에는 달리 이름을 붙일 길 없는 그 그윽한 마음의 종자(種子)를 아는 때문이다.
한번은 그가 들판을 걷다가 네잎클로버를 발견했던 모양이다. 딸까 망설이다가 이내 포기하고 그냥 돌아섰단다. 그 이야기를 시로 쓴 것이 있는데, 이렇게 끝난다. “차마 못 따겠구나/이 들녘에서 풀잎 하나라도 축을 낸다면/들의 수평이 기울어질 것이므로”(‘들녘’ 중에서).
세상에! 그런 사람을 빼놓으면 누가 시인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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