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에 가서 땀 흘리며 줏어온 산돌.
하이얀 순이 돋은 水晶 산돌을
菊花밭 새에 두고 길렀습니다.

어머니가 심어 피운 노란 국화꽃
그 밑에다 내 산돌도 놓아두고서
아침마다 물을 주어 길렀습니다.

- 시집 ‘안 잊히는 일들’(1983)에서


올 가을에, 서정주의 고향 마을인 전라북도 고창의 질마재 마을 일대에 노란 국화가 일제히 꽃망울을 떠뜨렸다. 무려 1억 송이나 된다. 어쩌다가 그의 생가나 시문학관을 둘러보러 오시는 분들을 제하곤 사람 구경 하기가 힘들었던 마을이 이즈음은 밀려드는 인파로 난리다. 그 1억송이의 장관과 짙은 향기에 취해 사람들은 참으로 오랜만에 너나없이 행복해 한다. 우리의 대표적인 애송시 ‘국화 옆에서’는 이렇게 다시 사랑받게 된 것이다.
위의 시는 서정주 미학의 대표적인 오브제 중의 하나인 국화의 개인사적 기원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인데,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국화 옆에서’의 국화가 일본 황실의 꽃이라느니, 따라서 고도로 기만적인 술책을 쓴 친일시라느니, 하는 언설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열 한살 짜리 소년이 아침마다 물을 주며 국화와 산돌을 기르던 마음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다. 그 국화는 우리의 재래종 동국(冬菊)이다. 찬 서리 내린 뒤에도 의연히 피어 있는, 아름답고도 강인한 여인의 향기를 소년은 우리에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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