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분명 아름다운 계절이다. 녹음의 채기(彩氣)가 짙어지고 꽃들도 강한 색감을 뽐내듯이 사람들의 활기도 화려하리만큼 왕성해진다. 사람도 자연도 사회도 넘실대는 활력을 뿌리치기 힘든 시기임에 분명하다. 창밖에서 울려대는 크라잉넛(Crying Nut)의 강렬한 락사운드(rock sound)와 열광하는 학생들의 환호는 기운찬 초(初)학자의 학습열마저도 압도하며 몇 번이고 창밖을 넘겨다보게 만드니 말이다.
오월, 무표정한 모습으로 벽 한쪽을 채우는 달력의 다섯 번째 장이기보다는, 분명 다른 특이점이 발견되는 달(月)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 건학100주년기념축전, 대동제…. 그야말로 축제의 연속이다. 음악이 흐르고 축하가 넘쳐나고 흥분과 기쁨이 충만된 시기. 계절의 여왕, 지금의 오월은 ‘Oh!월’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1961년, 1979년, 1980년, 1986년의 오월은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5·16, 5·17군사쿠테타, 5·18광주민중항쟁, 6월항쟁의 시작…. 우리 세대가 경험한 한국현대사의 과거 오월의 많은 시간은 피와 눈물, 폭압과 구호로 채워져 왔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에 대학인은 사회의 책임있는 지성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피와 땀으로 그 현장을 지켜왔다. 그 오월은 ‘(嗚)월’, 아니 ‘오(惡)월’이었을 것이다.
5월 17일 수업시간에 “다음 주에는 야외수업 해요”라는, 아니 “주점수업 해요”라는 당찬(?) 제안을 외치는 학생들의 상기된 볼에는 분명 현재의 ‘Oh!!월’만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가벼움(?)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싶다. 그 모든 ‘오(嗚)월’과 ‘오(惡)월’을 거름으로 하여 이 새롭고 화려한 ‘Oh!!월’의 꽃이 피어났다 싶으니 말이다. 구태여 이 푸른빛 오월의 일부를 과거의 빛바램으로 채워둘 필요는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득 환청처럼 머릿속을 맴도는, “매 맞고 감방 가는 형제들 있는데 XXX YYY야 쌍쌍파티가 뭐냐”라는 노랫말이 과거 ‘민주투사’를 자칭했던 486세대들에게 마저도 이미 전설같은 부담스러움으로 체감되는 시절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세계 초유의 대국으로 세계를 주무르며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구가하는 미국에 대해 그들의 지난 역사에 나타난 어두움과 부조리를 철저히 지적한, 하워드진(Howard Zinn)은 “미국이라는 열차는 현재라는 레일을 달려 끊임없이 과거로 만들며 미래라는 종착역으로 질주한다”라며 현재와 과거의 관계를 설파한 바 있다. 비록 인식하지, 의식하지 못한다 해도 현재는 분명 과거라는 토대 위에 세워져 있는 동일체이다. 과거(달려온 길)를 안다는 것은 현재(현재의 위치와 방향)를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5월에는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기쁨이 공존한다. 하지만 지금 캠퍼스의 5월에는 그 오월의 반쪽만이 넘실대고 있다. 나머지 반쪽의 오월에 대한 탐구로 채워진 도서관의 서가나 책상, 다른 학습의 장을 발견하기 어렵다. 열람실에서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학생의 모습으로부터라도 그 또한 ‘찰나의 과거를 학습하는 모습’이라는 괴변적 자위감이라도 가지고 싶어진다.

최봉석
법과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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