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일원이 된다. 생물학적인 성장만으로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에는 부족하여 사회화 과정에 일련의 의례(儀禮) 혹은 의식(儀式)을 만들어 놓고 일종의 삶의 질서에 따른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게 된다. 우리의 동양 전통인 관혼상제(冠婚喪祭), 불교의 수계(受戒), 결혼식 등이 여기에 속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구성원들로 하여금 이러한 크고 작은 의례적인 행위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존속을 꾀한다.
의례의 성격과 중요성은 그 유형에 따라 그리고 각 사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러한 의례가 계속 반복되면서 치명적인 약점이 나타나게 된다. 의례가 시간적으로 반복되면서 그 형식이 박제화 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러한 의례적 행위에 참여하는 성원 당사자가 스스로 의례를 ‘무의식적으로’ 따른다는 점이다.
특정 의례에 참여하는 당사자가 정작 의례 자체의 의미에 대해 나름대로 성찰하기보다 의례적 절차에 무작정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사실 인류가 만든 각종 의례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탓에 일종의 ‘자동화된 길들이기’에 기여하는 특성을 지닌다. 때가 되면 잊지는 않고(물론 잊어버리면 더욱 낭패가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아무런 반성행위 없이 무작정 의례에 ‘스쳐 지나듯’ 행동한다. 이로써 통과의례(通過儀禮)가 그 본뜻을 잃고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기에 이르렀다.
또 다시(!) 5월이다. 가정의 달이라고도 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이 이 달에 있다. 모두 정해 놓은 의례를 또 다시 통과하게 된다. 얼마 전 서울시교육청 소속 학교장 회의에서는 스승의 날에 휴교하겠다고 결정했다. 그 의미를 더욱 되살리려는 취지가 아니라, 학교 선생님에게 과도한 선물을 돌리는 나쁜 ‘관례’를 깨기 위한 이유라는 말을 들으면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관성적인 의례의 참여가 가지는 부정적인 결과에 더해서 의례 자체가 갖고 있는 목적성마저 붕괴되는 현실을 목격한다. 목적을 상실하게 되면 존재 이유도 동시에 사라지고 만다.
이러한 불행한 사태를 보면서 요구되는 것은 의례의 의미에 대한 성찰일 것이다. 선물에 대한 강박관념도 그 의미에 대한 성찰에서는 부차적이다. 결국은 마음가짐이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은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해 드린다는 단순한 목적성 앞에 형식은 중요한 것이 될 수도 없다. 의례가 더욱 진화하려면 무엇보다도 그 의미에 대한 성찰 또한 반복되어야만 한다.
또 하나. ‘5월의 의례’를 맞이하여 사랑하는 자녀, 존경하는 스승, 그리운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자신이 그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현재라는 시점의 일회성을 넘어서 의례를 매개로 전해지는 유구한 전통 속에 위치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이렇게 반복되는 의례에 개인적 존재의 ‘역사성’까지 스며있다.

조상식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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