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처장한승조 전 고려대 명예 교수의 망언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그의 망언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일제의 식민지배가 조선에 축복이었다’는 대목이다.
물론 이와 비슷한 망언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망언은 아예 뉴스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고 최근에는 ‘친일파를 위한 변명’과 같은 수준 이하의 책도 여러 권 출간되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올해로 개교 100년을 맞는 명문 사학의 명예 교수가 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고대 총학생회는 물론 거의 모든 언론 매체가 앞 다퉈 그의 발언을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다.
여기에 더하여 일본의 조직적인 독도 분쟁지역화 전략에 따른 독도 영유권 주장도 여론을 들썩이는 데 한 몫 하고 있다.
이러한 여론을 의식했는지 올해를 ‘한일 우정의 해’로 선포한 외교통상부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강도 높게 일본 측의 태도를 성토하고 나섰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에 대해 남쪽은 물론 북쪽까지 한목소리로 ‘과거청산’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음모 반대’를 외치고 있으니 가히 전 민족적인 반일 규탄 여론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역사의 현실

하지만 이에 대해 필자는 뭔가 걱정스럽고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작년 이 맘 때를 상기해 보자. 탤런트 이승연 씨가 이른 바 ‘일본군 위안부’ 누드 사진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룬 바 있다.
그 당시 모든 언론이 그녀에게 역사와 할머니들의 희생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결국 그녀는 여론의 압력에 굴복해 사죄하기에 이르렀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저 비난의 대상이 이승연에서 한승조로 바뀐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한승조와 이승연의 역사 인식을 유사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 사회가 이처럼 우리 역사에 대해 취약한 합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냈다고 보아야 한다.
역사를 대하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자. 대학 입시에서 역사 과목이 선택과목으로 전락한 것은 이미 오래 된 이야기며, TV 드라마 ‘야인시대’나 ‘영웅시대’같이 역사 왜곡을 자행하는 드라마가 폭넓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심지어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가 비밀 광복군이었다는 것이 사실인양 인터넷에 마구 유포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나아가 백범 암살 배후인 김창룡을 비롯한 많은 친일파들이 아직도 버젓이 국립묘지에 묻혀있고 친일파 홍난파, 현제명, 김기창, 김성수 등이 여전히 위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과연 우리는 한승조, 이승연을, 일본 우익 정치인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과연 우리는 망언의 당사자들에게 ‘역사는 이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설복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한승조 망언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친일청산’ 또는 ‘과거사 청산’을 게을리 했던가를 아프게 각인시켜주고 있다.
제2, 제3의 한승조는 우리 사회에 얼마든지 있다. 군사평론가 지만원과 월간 조선 사장 조갑제가 이미 또 다른 한승조를 자처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심지어 가수 조영남까지 ‘친일이 뭐가 나쁘냐’고 선구자인양 외쳐대고 있다.

역사를 재조명하자

정부는 올해가 광복 60년이라며 갖가지 문화 행사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올해는 국치 100년, 분단 60년, 굴욕적 한일협정 체결 4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결코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만 없는 것이 올해이다. 그동안 우리는 자랑스런 것만이 역사로 취급받는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오히려 부끄러운 기억과 그 기억의 공유와 전승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는 더욱 성숙해진다. 나라를 되찾은 ‘광복’이 한없이 기쁜 이유는 나라를 강제로 빼앗긴 ‘국치’의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한승조 망언은 오히려 우리들이 역사 앞에 얼마나 겸허했는지 되돌아 볼 좋은 기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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