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새아침이 밝았다. 오늘 아침도 여느 때처럼,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흐르고 새는 노래하고 꽃들은 다투어 핀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들은 햇살의 화폭에 점점이 박혀 있거나 떠다닌다. 무심하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과는 아무 상관없이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일찍이 라오쯔가 말하기를, “天地不仁(천지는 인자하지 않다)”이라 했는데 무심이 꼭 그렇다. 그러나 무심은 인자하지는 않지만 익숙하기는 하다. ‘그게 그거다.’
흐르는 시간 또한 늘 입는 옷처럼 익숙하고 편안하다. 시간은 존재의 애인이며 동시에 잔인한 배신자이기도 하다. 혈사(血絲)가 얼비치는 소녀의 뽀오얀 뺨에 가슴 설레는 키스를 보내는 이는 잠시 뒤에 바람의 혓바닥이 들락거리는 그녀의 해골을 보게 된다. 그런 것이다. 지난 수백 만 년 동안 우리는 시간의 이러한 본질에 익숙하게 길들여져 왔다.
그런데 오늘 아침 우리 동국가족들은 그 동안의 익숙한 시간의 심리학에서 쾌활하게 벗어난다. 오늘은 다른 날과 분명히 다르다. 2006년 5월 8일. 학교 역사의 새로운 한 세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조국의 파란만장한 현대사와 함께 헤쳐 나온 100년의 시간 앞에서 우리는 이제 약속하고 다짐한다. 오늘부터 우리는 새로 한 살이다. 이제부터는 100년을 버린다.
버리는 것은 폐기하는 게 아니다. 거듭 나는 것이며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매순간이 새롭고 경이롭다는 것을 깨치는 것이다. 햇빛 밝은 아침 연못, 밤새 수면에 잠겨 있던 연꽃봉오리가 피어나는 것처럼, 닫혔던 것이 열리는 것이며 죽었던 것이 살아나는 것이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져 들어갔다가 연꽃 속에서 살아나는 이야기를 ‘현실이 아닌 환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매순간 순간, 우리의 편안과 안주와 구태를 던져버리고 의식을 새롭게 깨어나게 하는 것이 ‘새롭게 살아나는 심청’ 이야기의 핵심이다. 오늘 아침, 새로 한 살을 시작하는 우리 동국대학교에 그 연꽃 냄새가 끊이지 않고 오래 가기를 기대한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잠시 마음만 먹어서는 안 된다. 용맹정진하려는 불굴의 의지와 그 실천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 굳센 의지와 실천 방법을 가장 확실하게 일러주시는 분이 바로 부처님이시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뜻에 따라 세워진 우리 동국대학교는 세계의 어느 대학도 가지지 못한 숭고한 도덕적 가치와 교육 목표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서양사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크게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다. 이제는 불교가 세계사의 중심이 된다. 지난 해 겨울, 총장 일행이 하버드 대학을 방문했을 때 그쪽의 석학들이 건넨 말이다. 그러므로 불교적 사유와 그 실천은 이제 ‘동양적’이라거나 ‘전통적’이라는 수식어를 버리고 ‘세계적’ 혹은 ‘미래지향적’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동국대학교는 여건이 얼마나 좋은가. 화두를 붙잡고 참선 삼매에 빠지는 스님 닮은 학생들, 순간의 깨침을 통해 영원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강의실마다 가득 차 있는 곳이 우리 동국대학교여야 한다. 이것이 새롭게 태어나는 동국의 정신이자 기상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건학 기념일을 맞아 마침 대선배 만해 한용운의 한시 10수가 새로 발굴되었다. 심우시(尋牛詩)다. 진리를 깨쳐가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과정에 비유한 것이다. 이 시의 제일 마지막 수 마지막 구절이 오늘 아침 우리 동국인들의 눈을 불태운다. ‘他日茫茫苦海裏(타일망망고해리), / 更敎蓮花火中開’(갱교연화화중개), ‘훗날 망망한 고해 속에서도 / 불꽃 속에 연꽃으로 다시 피리라.’ 불꽃 속에 피어나는 연꽃은 물론 선적 이미지이고 시적 상징이다. 여기서는 진선미의 모든 가치가 하나로 모인 결정체로 보면 된다. 이 결정체를 보는 일은 불굴의 의지와 그 도전적 실천정신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다. 건학 100년의 새아침, 우리가 100년을 버리고 새로 한 살로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