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산악그랜드슬램 달성으로 이제는 우리대학의 자랑스러운 스타가 아닌 국가적인, 나아가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박영석 동문.
그가 도전하고 달성한 산악그랜드슬램은 세계역사상 누구도 기록하지 못한 ‘꿈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욱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박 동문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그리 순탄하고 화려한 여정만이 펼쳐졌던 것은 아니다.
입학 당시 우리학교 산악부에 가입한 뒤, 진정한 산악인으로서의 열정과 꿈을 키워가던 박 동문은 선배 산악인들의 지도 하에 각종 국내, 해외 훈련에 참가했다.
그러던 중 1989년 26세의 나이로 겨울 히말라야 랑탕리(7025m) 원정 성공에서 원정대장을 맡아, 동계 랑탕리 세계 최초 등정이라는 위업과 함께 최연소 원정대장이라는 명예도 함께 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에도 그의 꿈을 향한 열정은 쉽게 꺼질 줄 몰랐다.
1993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이어 97년 한해 동안 히말라야 8000m 고봉 5개를 등반하는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박 동문은 점차 산악인들 사이에서 ‘진정한 클라이머’, ‘진정한 고산등반가’로 주목받으며 한국 최고의 고산등반가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도 박영석 동문은 2001년에는 로체(8516m), K2(8611m) 등반에 성공하여 8000m급 최고봉인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였으며, 2002년에는 남극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4897m)를 정복해 산악그랜드슬램을 향한 힘찬 도전의 발걸음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이 항상 기쁨의 결과로만 끝났던 것은 아니다. 산악 인생을 시작한 이후 성공가도만을 달리던 그에게 쓰라린 좌절을 경험하게 해준 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2월 산악그램드슬램을 목표로 도전한 북극점 원정에서 악천후로 인한 이상한파와 부상 등으로 인해 발걸음을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떠난 2003년 10월 남극점 등반에서 성공해 남극점 무지원 탐험 최단시간 세계 신기록이라는 명예를 추가했다.
그런 그가 지난 3월 9일 “단 1%의 가능성만 있다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시작한 꿈의 ‘도전’을 마침내 45일만에 꿈의 ‘기록’으로 바꾸어 놓는 깃발을 북극점에 꽂았다.
이번 박 동문의 쾌거는 그 자신의 성공뿐만 아니라 그의 죽음의 사투와도 같은 등정 때마다 가슴 한편에 함께 했던 우리 ‘동국대’의 쾌거이기도 한 점에서 100주년을 위한 큰 선물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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